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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하경민 작성일 : 2009-04-10 오후 5:31:57 조회 : 4014
[9211] 한글과 한자 구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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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한자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선생님이 문서를 한장 주셨는데..

“낯선 시선으로 보라…잠자던 상상력이 깨어난다”




󰊱 우리는 공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공기를 느끼지 않는다. 요컨대 낯익고 익숙한 세계는 더 이상 우리의 감각에 포착되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은 '자동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대하는 세상은 익숙하고 낯익고 편안하다. 예술가는 그 낯익은 세계를 마치 생전 처음으로 바라보기라도 하듯이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새롭게 재구성한다. 생전 처음 눈을 갖게 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할 것이다.

󰊲 낯설게 하기' 기법은 여러 문학 작품 속에서 발견된다. 러시아 모더니즘 시대에 활약했던 올례샤는 ‘물건들은 나를 싫어한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올례샤의 중편 《질투》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인데, 사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평론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간혹 유난히 잘 넘어지거나 잘 다치거나 먹을 때 입천장을 잘 데이는 사람들이 있다. 올례샤는 이런 사람들을 사물의 입장에서 '물건들이 싫어하는 사람들'로 분류한다. 주인공도 그 부류에 든다. 그래서 그의 앞에 놓인 수프는 절대로 식지 않고, 가구는 그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벼르고 있고, 그가 떨어뜨린 동전이나 단추는 꼭 하필이면 움직이기 어려운 가구 밑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 얼마 전부터 자기계발 영역에서 화두가 되어 온 '역발상'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낯선 시각에서 기존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흔히 말하는 창의성이라는 것 역시 남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거창한 발상의 전환이나 어마어마한 창의력이 아니라도 좋다.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이제까지와 다른 시점에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함께 사는 가족,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를 한번쯤은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자. 나 자신의 삶을 한번쯤은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자. 일상 속에 파묻혀 희미해져 가던 많은 것들이 그 낯선 시선 속에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마음,감사하는 마음,용서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



위내용에서 도대체 뭐가 한자인지..한글인지 구분이안가요. 어떤글자들이 한자인가요?




답변자 : ^.^ | 2009-04-10 오후 6:32:37 | 125.176.224.126

삭제

* 참고만 하시길...(스스로 사전을 찾아 확인해 보시길..)
󰊱 우리는 공기(空氣)에 너무 익숙해져서 공기(空氣)를 느끼지 않는다. 요컨대 낯익고 익숙한 세계(世界)는 더 이상(以上) 우리의 감각(感覺)에 포착(捕捉)되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感覺)은 '자동화(自動化)'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대(對)하는 세상(世上)은 익숙하고 낯익고 편안(便安)하다. 예술가(藝術家)는 그 낯익은 세계(世界)를 마치 생전(生前) 처음으로 바라보기라도 하듯이 '낯선' 시선(視線)으로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새롭게 재구성(再構成)한다. 생전(生前) 처음 눈을 갖게 된 사람에게는 세상(世上)의 모든 것이 신기(新奇)할 것이다.

󰊲 낯설게 하기' 기법(技法)은 여러 문학(文學) 작품(作品) 속에서 발견(發見)된다. 러시아 모더니즘 시대(時代)에 활약(活躍)했던 올례샤는 ‘물건(物件)들은 나를 싫어한다’라는 문장(文章)으로 유명(有名)하다. 이것은 올례샤의 중편(中篇) 《질투(嫉妬)》에서 주인공(主人公)이 하는 말인데, 사물(事物)의 입장(立場)에서 인간(人間)을 바라보는 독특(獨特)한 방식(方式) 때문에 평론가(評論家)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간혹(間或) 유난히 잘 넘어지거나 잘 다치거나 먹을 때 입천장(天障)을 잘 데이는 사람들이 있다. 올례샤는 이런 사람들을 사물(事物)의 입장(立場)에서 '물건(物件)들이 싫어하는 사람들'로 분류(分類)한다. 주인공(主人公)도 그 부류(部類)에 든다. 그래서 그의 앞에 놓인 수프는 절대로 식지 않고, 가구(家具)는 그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벼르고 있고, 그가 떨어뜨린 동전(銅錢)이나 단추는 꼭 하필(何必)이면 움직이기 어려운 가구(家具) 밑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 얼마 전(前)부터 자기계발(自己啓發) 영역(領域)에서 화두(話頭)가 되어 온 '역발상(逆發想)'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낯선 시각(視覺)에서 기존(旣存)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出發)한다. 흔히 말하는 창의성(創意性)이라는 것 역시(亦是) 남들과는 다른 각도(角度)에서 사물(事物)을 인식(認識)할 수 있는 능력(能力) 의미(意味)한다.
세상(世上)을 놀라게 하는 거창(巨創)한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나 어마어마한 창의력(創意力)이 아니라도 좋다. 타성(惰性)에서 벗어나기 위(爲)해서라도 가끔은 이제까지와 다른 시점(視點)에서 사람과 사물(事物)을 바라볼 필요(必要)가 있다. 함께 사는 가족(家族),매일 만나는 직장(職場) 동료(同僚)를 한번쯤은 낯선 시선(視線)으로 바라보자. 나 자신(自身)의 삶을 한번쯤은 낯선 시선(視線)으로 바라보자. 일상(日常) 속에 파묻혀 희미해져 가던 많은 것들이 그 낯선 시선(視線) 속에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마음,감사(感謝)하는 마음,용서(容恕)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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